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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삼순’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었다

by diary1010 2025. 5. 5.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 포스터
내이름은 김삼순

 

2005년 방영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유쾌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통해 당시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을 뒤흔들며, 한국 드라마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선아가 연기한 김삼순은 나이 서른, 결혼도 못 하고 직장에서도 퇴출당한 평범한 여자였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 하나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현빈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이 드라마는 감각적인 연출과 재치 있는 대사, 무엇보다 사랑과 자존감의 균형에 대한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나는 29세로, 직장 5년 차에 접어들며 사랑과 일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기였다. 김삼순의 대사를 들으며 웃다가도, 정작 내 안의 감정과 마주하며 눈물이 고였던 그 시절이 생생하다. 지금 48세가 된 이 시점에서 ‘김삼순’이라는 인물을 다시 떠올려보니, 단지 드라마가 아니라 ‘살아낸 누군가의 기록’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2005년 여름, 삼순이와 함께했던 내 불안한 스물아홉

2005년.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간 지 5년쯤 되었고, 직장인으로서 익숙한 듯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오던 시기였다. 그런 나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웃으며 상처를 꿰매주는 친구 같았다.

MBC 수목극으로 시작된 이 드라마는 방영 첫 주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캐릭터도, 이야기 전개도 기존 로맨스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다. 여주인공 김삼순은 서른 살에 회사에서 잘리고,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겪었던 혹은 목격했던 일들과 너무 비슷해서 오히려 더 웃기고 더 아팠다.

김삼순의 매력은 외모나 배경이 아닌, 자기감정에 솔직한 태도였다. 슬프면 울고, 억울하면 따지고, 불안하면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에게 너무도 진하게 와닿았다. 특히 “나, 삼순이야. 이삼순도 아니고 김삼순이야!”라고 외치던 장면은 이름에 담긴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나는 회사에서는 후배와 상사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입장이었고, 집에서는 가족들이 결혼을 종용하였고 연애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 김삼순은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쩌면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어른’ 같았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이면 TV 앞에 앉았다. 처음엔 웃으려고 켰던 드라마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서 찾는 시간이 되었다. 내 얘기 같았고, 내가 되지 못한 누군가 같기도 했던 김삼순. 그래서 그녀는 단순한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그 시절 나의 또 다른 자아였다.

김삼순과 진헌,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이름의 사랑

‘내 이름은 김삼순’이 단순한 인기 드라마로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여주인공의 서사와 자존감 회복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삼순은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 있는 파티시에였지만, 나이 서른에 ‘김삼순’이라는 흔한 이름, 통통한 몸매, 사회가 정해놓은 ‘여자 주인공’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녀가 잘생기고 능력 있는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현빈 분)과 계약 연애를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본격적인 전개를 시작한다.

진헌은 첫사랑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다. 삼순과의 관계도 처음엔 가벼운 감정 교환에서 시작되지만, 그녀의 진심과 사람다움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이 관계가 특별했던 이유는, 삼순이 진헌에게 무조건 맞추거나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진헌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삼순이 말한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를 너무 아프게 하는 사랑은, 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해.” 이 대사를 듣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20대 후반의 나에게도 그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연애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스스로를 소모하면서 누군가를 붙잡으려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순은 자신을 미워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몸무게에 흔들리지 않고, 나이에 주눅 들지 않고, 사랑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웃을 줄 알았다. 그 모습은 당시의 우리 모두에게 치유와 해방감을 주었다.

OST ‘She Is’와 ‘Be My Love’는 드라마의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고, 코믹하면서도 울컥하는 장면이 이어지며 드라마는 매 회차가 기대되었다. 심지어 당시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이면 ‘어제 삼순이 봤어?’라는 말이 인사처럼 오갔고, 삼순이 했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며 소소한 위로를 주고받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이름이기도 했다. 뚜렷한 성공도, 거창한 배경도 없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48세의 내가 다시 꺼내 본 김삼순, 그 이름이 전하는 위로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는 마흔여덟이 되었다. 사랑도, 일도, 인생도 더 이상 격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감정의 온도가 남아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른이 되려 애쓰던 20대 후반의 내 모습, 상처받는 게 두려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던 삼순이.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 감정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삼순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나에게 자존감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 한 명의 친구였다.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김삼순은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나의 20대를 통과해 준 그 이름. 내가 잊지 못할 단 하나의 위로. 그 이름은, 김삼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