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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뜨겁고, 서툴렀을까” – 응답하라 1997

by diary1010 2025. 5. 6.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포스터
응답하라 1997

 

2012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 보낸 여섯 친구들의 청춘과 우정을 되짚는 레트로 감성 청춘 드라마다. 정은지, 서인국, 신소율, 은지원 등 신선한 캐스팅과 탄탄한 각본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H.O.T와 젝스키스의 팬덤 열기부터 삐삐, 모뎀 소리, 종이학 편지 등 90년대 고유의 정서를 정교하게 복원해내며 대한민국 드라마사에 ‘응답하라’ 시리즈의 시초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1997년 대학에 입학했다. 캠퍼스라는 공간이 낯설고, 세상도 나 자신도 혼란스러웠던 시기.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2년, ‘응답하라 1997’을 마주한 순간 나는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지만, 여전히 가끔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고, 울고, 생각한다.

1997년, 내 인생의 서사가 처음 쓰이던 해

1997년은 나에게도 특별한 해였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삶이 어색하고 낯설던 때였다. 삐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친구들과 ‘컴퓨터통신’을 하던 시절. 소풍에는 H.O.T 노래를 틀고, 책가방엔 팬클럽 회지가 들어 있던 그 시절. 그 시절의 문화와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드라마가 바로 ‘응답하라 1997’이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시원(정은지)은 부산 출신의 열혈 H.O.T 팬이자 우직하고 다소 무뚝뚝한 남사친 윤윤제(서인국)와 티격태격하며 자란 인물이다. 그들의 고등학생 시절은, ‘팬심’이라는 이름의 광기 어린 순수함, ‘고백’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용기, ‘우정’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애증으로 가득했다.

드라마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단순히 그 시대의 복고적 디테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내 20대의 시작,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든 그 감정들을 그 누구보다 솔직하게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 회차마다 내 1997년의 어느 오후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정, 사랑, 가족… 너무도 익숙했던 이야기, 그래서 더 아팠던 기억

‘응답하라 1997’은 레트로가 아니라 기억의 드라마였다. 우리는 모두 시원이었다. 혹은 윤제였다. 혹은 성재였고, 혹은 유정이었다. 우리 모두, 누군가를 좋아했고, 말하지 못했고, 떨어졌고, 다시 돌아왔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 고백’이 아니라, 사랑을 숨기던 그 시절의 불안함에 있었다. 그때는 감정이 많았지만, 표현은 서툴렀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윤제가 “좋아한다, 너.” 라고 말하던 장면에서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내가 끝내 하지 못했던 말, 혹은 들을 수 없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시원의 아버지가 암 투병 중 병실에서 딸을 바라보는 눈빛, 시원의 엄마가 김밥을 싸서 아이들을 챙기던 장면. 그 모든 장면이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삐삐, PC통신, 테이프 레코더 같은 시대의 기호들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시절의 감정 온도였다. 그걸 이 드라마는 정확히 복원해냈다.

그 시절을 품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나는 이제 마흔여덟. 삐삐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CD 대신 스트리밍을 듣고, 누군가를 향한 감정도 훨씬 조심스럽게 다룬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을 떠올리면, 가끔은 그때처럼 서툴러도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를 통해 과거를 소환했다. 신혼초부터 치열했던 남편과도 드라마를 함께 보며 사이가 좋아졌다. 드라마를 보면서 둘이 함께 그시절의 우리들을 소환하였고 남편과 격하게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추억에 잠기고 이렇게 공감을 하고 몰일할 수 있던게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더욱 더 크게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을 품고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7’은 그걸 조용히 응원해주는 드라마다.

인생이란 건 결국 어떤 순간을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1997년의 그 감정들을 기억하려 한다. 웃기고, 찌질하고, 어설펐지만, 그 시절의 나도 분명 진짜였고, 뜨거웠고, 살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