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1900년대 초 격동의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신분과 국적, 계층을 뛰어넘어 조국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역사 멜로드라마다.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감독의 협업, 이병헌·김태리·유연석·변요한·김민정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고,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으며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겼다. 독립운동을 다룬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시적으로, 동시에 가장 비극적으로 조선을 그려낸 이 작품은 ‘누가 역사를 만들고, 누가 지켜내는가’라는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지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조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사랑은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
‘미스터 션샤인’은 멜로 드라마로 시작해 전쟁 드라마처럼 끝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 한 번도 멜로도, 전쟁도 아닌 순간들이 많았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등을 돌릴 수도 없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함께할 수 없는 그 시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선택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익숙한 서사의 경계를 부수고, 감정과 역사, 개인과 민족, 사랑과 희생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품은 채 한 장면 한 장면을 시처럼 써내려간다. 이병헌이 연기한 유진 초이,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미국 군인이 된 남자.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 양반가 규수이자 명문가의 마지막 피로 남은 여성 저격수. 그리고 유연석의 구동매, 천민의 신분에서 일본 검객이 된 사내. 이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았고, 사랑보다는 의무가,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가까웠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조선’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살고, 누구의 이름으로 죽었는가
1900년대 초 조선, 나라는 이미 망조에 들었고, 일제는 점점 깊이 침투해오고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리’에서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유진 초이는 조선이라는 땅에서 상처받고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그곳을 지킨다. 그는 미국의 군복을 입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조선 사람으로서 죽기를 선택한다. 그의 감정은 겉으론 말없이 냉정하지만 눈빛은 항상 애끓는다. 고애신은 시대를 살아낸 여성이었다. 여성으로, 양반으로, 지식인으로, 그리고 저항자로서 자기 자신을 한 번도 놓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의 대사는 늘 단단했다. “조선을 위하여.” 이 한마디에 그녀의 삶 전체가 응축돼 있었다. 구동매는 말이 필요 없는 캐릭터다. 사랑받아본 적 없는 인생. 사랑하고 싶었으나, 그 감정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남자. 그의 사랑은 끝내 닿지 않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이 인물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택하는 과정은 단지 비극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책임진 영상미와 음악이 있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대사 하나, 의상 하나, 배경 하나까지 모두 “이 시대를 예의 있게 기억하기 위한 의지”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도 이 드라마를 마음속에서 애도한다
개인적으로 ‘미스터 션샤인’은 내가 가장 조용히 많이 울었던 드라마였다. 유진 초이가 마지막을 향해 기차를 향해 서서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죽습니다.”라고 말하던 장면. 그 장면을 보고 난 다음 며칠은 아무 이유 없이 뉴스에서 ‘나라’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것도, 독립운동 이야기에 민감한 것도 아닌데 왜 그 장면이 그렇게 아팠는지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그렇게 죽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는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저 너무 많은 감정을 ‘남긴다’. 그 여운은 지금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영화속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리얼리트가 중요시되면서 너무 적나라하게 그시대의 아픔을 우리는 끊임없이 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울분이 쌓이고 우리내 정서에서는 용서가 안되는거 같다. 그래서 난 주인공들의 빛나는 순간이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는것을 그래서 드라마 초기부터 예상하고 있었던거 같다.
한 줄의 시처럼 남은 그들의 이야기
‘미스터 션샤인’은 연출, 각본, 캐릭터, 메시지 모든 측면에서 ‘완성도’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어떤 감정을 시청자에게 남겼는가이다. 기억의 상처,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사람, 사랑을 끝내 고백하지 못한 사람, 스스로를 지우며 남을 살린 사람. 이들은 모두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기록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단지 멜로를 쓴 게 아니라 한 편의 시대 추도사를 남긴 셈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슴 속에 하나쯤 품고 있다. “기억하라, 그 뜨거웠던 이름을.”
역사를 기억하고 시대의 아픔을 알고 있기에 이 드라마는 드라마속 주인공들의 열연과 전개는 우리내 마음에 슬픔과 분노를 오고가게 만든다. 나라의 역사속의 아픔과 한이 시청자로 하여금 이야기속으로 더 몰입하게 만든다.
역사는 기록이고, 드라마는 기억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단지 잘 만든 시대극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작품이다. 정치는 무기력하고, 뉴스는 시끄럽고, 사람들은 점점 각자의 안위에만 몰두해가는 시대에 이 드라마는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느냐.” 그리고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되돌아볼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션샤인이 되어야 한다.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