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JTBC에서 방영된 ‘이태원 클라쓰’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청춘들의 창업 이야기와 성장 서사를 담은 드라마다. 박서준이 연기한 박새로이의 강단 있는 리더십, 김다미가 보여준 독보적인 존재감,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하나로 모은 ‘단밤’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선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권력, 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이 드라마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진정성 있는 청춘 서사로 기억된다.
나는 웹툰으로 이태원 클라쓰를 알고 있었기때문에 드라마로 보기에 좋은점도 있었지만 반대인점도 있었다. 알고있는 자만의 특권인가? 드라마가 종영까지 내내 마음에 들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작이라 생각이 든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었을때의 유치함도 없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었으니까.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
‘이태원 클라쓰’는 단순한 청춘 드라마가 아니다. 그 안에는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분노, 그리고 나를 지키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증명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는 아주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박새로이. 하지만 아버지를 부당하게 잃고, 그 원인을 제공한 재벌가 ‘장가’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부딪친다. 그는 울지 않는다. 굴복하지도 않는다. 단지 묵묵히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사람을 하나씩 모으는 일이 된다. ‘단밤’이라는 작은 포차가 그들의 꿈이자 또 하나의 ‘전장’이 된다.
차별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
이 드라마의 진짜 가치는 박새로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이들의 존재에 있다. 조이서(김다미)는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천재지만, 박새로이의 신념에 반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그녀의 서사는 ‘이해받지 못한 존재가 사랑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장근수, 마현이, 김토니, 최승권. 각자 사회적 소외와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다. 그들이 ‘단밤’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회복해가는 과정은 드라마가 단순한 성공기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도 상징적이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 그래서 ‘단밤’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내가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곳’이 된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메시지다.
내가 ‘단밤’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
우리같이 평범한 직장인은 대한민국 자영업에 대해서 막연한 꿈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둘때 내가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이렇게 자영업으로 성공하는 스토리가 관심이 가는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밤이라는곳은 어떻게보면 스토리가 전개되는 배경이고 매개체일뿐 각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모습에 반해서 몰입하게 되는거 같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자주 상상했다. 나도 그 식당 어딘가에 앉아 박새로이의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조이서의 눈빛을 마주하고 싶다고. 왜였을까. 그곳은 마치 세상의 경계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위한 쉼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정의로운 선택이 늘 손해로 돌아오고, 진심은 인정받기보다 이용당하기 쉽다. 그런 세상에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또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지를 박새로이의 얼굴에서 봤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쉼터'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이 드라마가 내게 준 감정의 정체였다.
성공이 아닌 ‘존엄’을 쟁취하는 이야기
박새로이의 목표는 단순히 복수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 싶었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결과’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좇지 않았고, 욕심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때로는 멀고, 비효율적일지라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건 ‘정의란 결국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장대희 회장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람은 가지지 못했다. 그와 대척점에 선 새로이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고, 마음을 얻었고, 결국 세상도 바꾸었다. 그 역전은 단순한 드라마적 설정이 아니라, 신념이 현실을 이긴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태원 클라쓰’는 성공 서사가 아니라 존엄에 대한 드라마다.
결국은 사람이라는건가. 우리나라 드라마들 특히 이렇게 사업이나 장사를 주제로 하는 스토리에서는 항상 주장하는게 사람이었던거 같다. '상도'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랬었고. 그런데 드라마 역시 누군가의 인생이야기를 다룬것처럼 우리들 인생도 별반 다를게 없다. 얻기 힘든게 사람이고 내 삶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는다는게 쉽지 않다는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거 같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우리 아이 이렇게 얻은것만 해도 만족하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이태원’이 필요하다
드라마는 시청율을 쫓아가다보니 현실이 과장되게 표현하는게 많다. 우리 아이에게는 어떻게보면 많은 경험을 쌓는게 중요하다 생각하며 아이와 참 많이 여행을 다녔다. 이런 생각의 연장으로 드라마는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다른 인생의 삶을 간접경험하게 하는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사고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스토리는 교육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건 우리집 아이가 조금만 더 컸어도 함께 보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공부가 세상의 다이고 성공하는 방법이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라는걸 가르쳐주고 싶었으니까.
세상은 아직도 정의보다 속도가 중요하고, 사람보다 숫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세상에서 ‘이태원 클라쓰’는 조용히 선언한다. “너는 옳은 선택을 해도 된다. 조금 늦어도, 끝까지 가면 이긴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단밤’을 남겼다. 그곳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며 존재의 의미를 증명한 장소였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어쩌면 매일 ‘단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그 공간이 되고 싶고, 그곳에서 한 잔의 온기를 마시고 싶다. ‘이태원 클라쓰’는 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장 단단한 응원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