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SKY 캐슬)’은 대한민국 최상위 0.1% 상류층 가정의 입시 경쟁을 배경으로,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부모들의 집착과 그로 인한 붕괴 과정을 냉소적이고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풍자 드라마다. 염정아, 이태란, 김서형, 윤세아, 오나라 등 여성 중심 캐릭터들이 중심축을 이루며 고도의 입시 전략, 계급의식, 허위된 가족애가 드러나는 과정을 스릴러처럼 흥미롭게 풀어냈다. ‘입시 코디’라는 단어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이 드라마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한국 사회가 감추고 있던 민낯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보는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시청률을 위해서 더 과장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정도로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고 있는 우리집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든다.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웠던 우리 부모님세대 그리고 지금 키우고있는 우리들 모두 드라마를 재미만으로 보지는 못했을것이다.
욕망의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전쟁터에서
‘SKY 캐슬’은 단순히 입시 드라마가 아니다. 욕망이 교육이라는 틀을 만났을 때 사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리극이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그리고 그 출발점엔 늘 ‘교육’이 있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교육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이를 위한 교육이었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자존심, 체면, 콤플렉스를 덮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교육. 그 구조가 만들어낸 폐해를 ‘스카이 캐슬’이라는 이름부터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모여 사는 그곳. 자녀를 서울의대에 보내는 것이 가문 전체의 명예가 되는 사회. 그 안에서 무너지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한강 건너편이 압구정동이었다. 남편과 한강을 산책하다 의자에 앉아 강건너 현대아파트단지를 쳐다보며 저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이 강 하나를 두고 동네가 참 많이 다르다 하며 이야기를 했던게 기억이 난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낮이든 밤이든 아이들이 뛰어놀았는데, 지인집을 방문할 일이 있어 갔던 압구정 아파트 단지에는 놀이터에 정말 아이가 한명도 없었다. 정말 신기해서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가서 밤늦게까지 지낸다고 하더라. 이곳 아이들은 정말 바쁘구나.
엘리트 부모와 엘리트 자녀, 그러나 모두 불행하다
‘스카이 캐슬’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라 교육을 삶의 ‘목적’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한서진(염정아)은 외적으로 완벽한 ‘성공한 엄마’이자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서울대 의대에 딸을 보내기 위해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을 고용한다. 김주영은 이 드라마의 중심을 뒤흔드는 인물이다. 입시를 마치 ‘과학처럼’ 설계하며 감정이 배제된 승부사의 면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녀 역시 한때 실패한 ‘엄마’였고, 그 트라우마를 다른 가정의 아이를 통해 다시 극복하려는 자기구원적인 집착을 보인다. 이 드라마의 무서움은 그 누구도 완전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지만, 그 사랑은 너무 무겁고 폭력적이다. “엄마가 널 위해 해주는 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익숙하지만 가장 잔인한 문장. 그 말은 사실상, “너는 엄마의 삶을 대신 살아줘야 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결국 아이들은 혼자 무너진다. 감정의 해소도, 자기표현도 하지 못한 채 완벽한 ‘결과물’이 되길 요구받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를 위한 교육은 없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가장 무서웠던 순간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스카이 캐슬’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어쩌면 곧 닥칠 현실 같았다. 특히 드라마 후반,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사건 이후 그 엄마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게 남아 있다. “나는 아이를 위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 대사는 단순한 반성이 아니었다. 아이가 겪었던 고통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부모의 한계’였다. 나도 문득 두려웠다. 혹시 아이의 성적이 나의 자존심이 되어가고 있진 않았을까. 과연 나는 아이를 ‘이름 없는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내 아이’라는 타이틀 속에 스스로의 결핍을 덮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이 드라마는 그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교육이 욕망이 되었을 때, 무너지는 공동체
드라마는 다양한 가정을 통해 입시의 민낯을 조명한다. 윤세아가 연기한 노승혜는 비교적 현실적인 엄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자기 주관도 명확하다. 하지만 남편 차민혁(김병철)은 성공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 말한다. 그는 아이를 ‘프로젝트’로 다루고, 스스로를 ‘멘토’라 부르며 지독한 위계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의 가정도 결국 파국에 이른다. 또한 오나라가 연기한 진진희는 다소 허당이지만 아이에게 비교적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이 캐릭터는 자기 반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로, 결국 드라마 후반에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말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그 아이는 부모의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그것은 단순히 입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부정이다.
결국은 그들만의 리그같이 우리나라 상류층만의 문제가 아니다는것을 시청자들도 다 알고 있을것이다. 우리아이가 유치원에 다닐때 유치원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봉고차를 타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영어, 수학학원등 학원을 다니는게 보편화 되었고 친구 엄마들은 모여서 서로 학원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 그냥 평범한 동네의 아파트 단지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키워야 하는게 옳지 않다 생각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참 쉽지 않은거 같다. 나역시 어쩔 수 없는 엄마이기에 아이를 편하게 뛰어 놀릴수많은 없어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말이 무서운 이유
‘스카이 캐슬’은 단지 상류층 이야기라고 보기엔 너무나 우리 사회 전반을 향한 이야기였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지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지우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 점을 너무도 뼈아프게 보여준다. 사랑은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누구보다 위험한 무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무기를 너무 쉽게 들고 있는 건 아닐까. 스카이 캐슬은 끝났지만, 그 이야기는 여전히 오늘의 뉴스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집 아이는 저녁 늦게까지 수학문제를 풀고, 학교 숙제를 하고, 영어책을 읽고 잠자리에 든다. 내가 중학생때도 하지 않았던것들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가 하고 있는데 이걸 끊어낼 수 없다. 그냥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기때문에 나중에 아이에게 원망을 들을수도 있기때문에 하며 스스로 변명을 해보지만 결국 내 욕심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며 괴로운마음이 드는경우가 너무 많다. 세상이 빨리 변해서 이 가치관이 우리나라에서 없어지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