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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탐욕, 그 끝은 어디인가 – 펜트하우스

by diary1010 2025. 5. 21.

개인적으로 막장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막장을 빼면 뭐가 남을까 싶을때도 있다. 팬트하우스는 조금 고급스러운 막장이라고 할까?

2020년부터 2021년까지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상류층 인물들의 치열한 욕망, 복수, 계급 경쟁, 그리고 자녀 교육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막장 복수극이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강렬한 필력과 유진, 김소연, 이지아를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극강의 연기력이 맞물리며 시즌 3까지 이어졌고,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동시간대 독보적 1위를 차지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포스터
펜트 하우스

욕망이 집결된 공간, 펜트하우스

한강을 내려다보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단순한 부의 자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탐욕과 허영, 그리고 복수였다. ‘펜트하우스’는 제목 그대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추악한 이면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설정은 권력과 돈이 인간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에 대한 극단적인 서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히 부정적인 인간 군상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녀를 위한 사랑, 삶의 회복, 정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라는 테마를 막장이라는 틀 속에 녹여낸다. 그러기에 ‘펜트하우스’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사회 풍자극처럼 보인다.

각 캐릭터의 욕망과 그 결말

드라마의 중심엔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심수련(이지아) – 우아하고 조용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강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 천서진(김소연) – 예술적 천재성을 지닌 성악가지만 무한 경쟁과 계급 의식 속에서 끝없이 타인을 짓밟으며 올라서는 ‘엘리트형 악녀’. 오윤희(유진) – 하층 계급 출신으로, 자녀를 위해 뭐든 감수하는 현실적인 엄마. 이 세 인물의 갈등은 단순한 신분 차이에서 시작되지만 곧 각자의 ‘욕망의 정의’가 충돌하는 과정으로 번진다. 뿐만 아니라 주단태(엄기준)라는 상징적인 악역은 돈과 권력을 위해 양심과 도덕을 파괴하는 인물로, 드라마의 모든 악행을 상징적으로 끌고 간다. 그는 무감정한 얼굴로 살인을 기획하고, 자신의 아이까지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괴물이 된 인간의 전형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과장된 진실’로 느꼈다

처음 ‘펜트하우스’를 보기 시작했을 때, 이야기가 너무 자극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즌 2쯤 되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과장일까?” 입시 경쟁, 계급 차별, 갑질 문화, 그리고 부모의 허위된 자아 투사.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펜트하우스’는 그걸 아주 극단적으로, 그러나 명확하게 보여준 드라마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과장을 보며 진짜 현실을 더 뼈아프게 느꼈다. 가끔은 막장도 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나본 성공한 사람들중에는 존경할만한 분들도 많았다. 부자들은 싸가지없고 나쁘다는 설정은 그냥 우리들 욕망안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인성과 함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도 반듯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오히려 삶을 치열하게 사는 우리들이 더 야생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찌되었든 영화는 흥행을 위해서 그리고 드라마는 시청률을 위해서 움직이다보니 성공 보증수표 '막장' 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이고 우리는 이걸 알면서 또 열광하게 되는거 같다.

막장 속 진실 – 부모, 자식, 그리고 계급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중심은 바로 ‘자식’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을 짊어진 채 살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눌러야 했고, 때로는 부모의 실패를 반복하기도 한다. 배로나, 하은별, 주석훈, 주석경 등 청소년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현재의 무게에 짓눌린 청춘의 초상이었다. 결국 드라마는 묻는다. “부모의 욕망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자식을 위한 선택은 정말 자식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지금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의미 있는 유산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통해서 난 우리 아이에게 '인생'을 바로 알게하고 '자립'할 수 있게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내욕심'을 위해서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지만 오늘도 아이와 수학공부를 가지고 한반탕 소동을 치루고보니 아이의 '공부'에 목숨걸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거 같다.

펜트하우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인성을 말하다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대중성, 화제성, 논쟁성 모든 것을 갖춘 작품이었다. 극단적 전개,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 하지만 그 안엔 우리가 외면해온 사회의 민낯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들을 붙잡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말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과연 당신이 원하던 세상입니까?” ‘펜트하우스’는 삶의 천장 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을 조용히 지적한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