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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에 대하여 – 동백꽃 필 무렵

by diary1010 2025. 5. 17.

2019년 KBS2에서 방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둘러싸여 살아온 한 여인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랑과 성장, 용서와 연대, 그리고 작은 동네의 정서를 따뜻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힐링 멜로드라마다. 공효진과 강하늘의 자연스러운 연기, ‘까불이 사건’이라는 스릴러 요소가 어우러져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두루 갖춘 드라마로 평가받았으며,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동백꽃 필 무렵

 

세상 모든 동백들에게, 사랑받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드라마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느낀다.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늘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동백꽃 필 무렵’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은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드라마였다. 공효진이 연기한 동백은 편견 속에서 살아왔다. 미혼모, 술집 주인, 조용한 성격.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 그녀는 온갖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동백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조용히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그녀의 인생에 황용식(강하늘)을 데려다준다. 누가 뭐래도 “동백 씨는 내가 지킬게요”라고 말하는 단순하고, 우직하고, 따뜻한 그 사람. 이 둘의 만남은 단지 연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던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약자인 여주(여자주인공)와 그 주인공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남주(남자주인공)로 이루어진 드라마 컨셉상 뭐 뻔한 이야기이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내 인생이 뻔하기 때문에 또 우리는 이런 사랑 이야기에 빠져든다. 나도 저런 사랑을 받아봤으면 하는 기대함을 가지고말이다.

사랑, 성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

‘동백꽃 필 무렵’은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공동체 안에서의 연대편견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서사에 있다. 옹산이라는 작은 동네는 처음엔 동백에게 차가운 곳이었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뒤에서는 수군거리는 주민들. 그들의 시선은 동백을 “우리 동네 사람은 아닌”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황용식의 뚝심 있는 사랑이 그 중심에 있다. 그는 동백을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게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백 역시 변한다. 늘 움츠러들던 그녀는 이제 용기 내어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돋보이는 이유는 주연뿐만 아니라 모든 조연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정숙, 규태, 향미, 필구, 그리고 정미소장까지. 그들의 인생도 하나하나 중요하게 다뤄진다. 특히 향미의 서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겉으로는 산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세상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 그녀의 존재는 이 드라마가 얼마나 ‘모든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이 드라마가 내게 준 용기

사실 나는 동백을 보면서 이상하리만치 자주 울었다. 감정이 격해져서라기보다는, 그녀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나 역시 조용히 사는 게 편하다고 느꼈다. 괜히 나서서 상처받을 바엔 말을 줄이고, 기대를 접고, 그냥 주어진 것만 하며 살아가는 게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게 여자는 드세면 안되다는 우리나라 내또래 여자들이 무수히 들으면서 자라왔기때문이다. 사회의 편견과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으며 살수 있는 여자가 있었을까? 하지만 동백은 내게 물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냐고.”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고. 그 진심이 드라마의 말투로, 눈빛으로, 대사로 전해져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은 용식이 동백에게 말하던 그 대사다. “동백 씨는 그냥 존재만으로 예뻐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그런 말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집 남편을 좀 째려보았고 남편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나한테 똑같이 말해주기는 했다. 

스릴러 속에 감춰진 사랑의 언어

이 드라마의 특이점 중 하나는 ‘까불이 사건’이라는 연쇄살인 미스터리가 서사 속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엔 로맨스와 스릴러의 결합이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긴장감은 인물 간의 감정이 더 진하게 전해지는 배경이 되어준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공포,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사랑은 더 선명해지고, 인간은 더 본능적으로 진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진실 뒤에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누구도 혼자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 드라마의 중심 메시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까불이 사건은 그저 자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드라마의 철학을 위한 장치였다고 느껴졌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다

‘동백꽃 필 무렵’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가장 특별한 위로를 주는 이야기다. 사랑이란 말이 어쩐지 진부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요즘, 이 드라마는 말한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아야 산다.” 그리고 그 사랑은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다.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때로는 함께 화내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준다. 지금 당신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세상 사는게 참 바쁘고 분주하지만 그 사람을 바라보기를 권해본다. 세상 사는게 뭐 있나. 그래도 그 사람은 내편인것을. 동백꽃은 차가운 겨울에도 피어난다. 그러니까 당신도, 지금 이 계절 속에서도 충분히 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