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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평범해서 더 빛났던 이야기 – 슬기로운 의사생활

by diary1010 2025. 5. 19.

tvN에서 2020년과 2021년, 시즌1과 시즌2로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을 배경으로 한 메디컬 드라마이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휴먼 드라마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가 연기한 99학번 의대 동기 5인방이 중심이 되어, 의료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따뜻하게 풀어내며 국내 시청자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한 일상, 리듬 있는 연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슬기로운 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슬기로운 의사생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학 드라마지만 극적인 사건이나 긴장감보다는 ‘삶 그 자체’를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하는 작품이다. 연세 세브란스병을 모티프로 한 율제병원을 배경으로 매일같이 생사의 경계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마주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전달하려는 건 그 ‘극한’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조정석이 연기한 이익준, 유연석의 안정원, 정경호의 김준완, 김대명의 양석형, 전미도의 채송화. 이 다섯 친구는 의학이라는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사는 평범한 삶의 감정과 고민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들의 병원 생활뿐 아니라 친구로서, 부모로서, 연인으로서 서로를 어떻게 지켜주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바로 그게 ‘슬의생’이 많은 이들에게 치유처럼 느껴졌던 이유다.

의사도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진심이어야 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도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각 캐릭터들은 실력 있는 의료진이면서도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익준은 과하게 유쾌하지만 동료와 환자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고, 정원은 늘 배려하지만 자기 감정을 누르며 살아온 사람이다. 준완은 직설적이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석형은 무심한 듯 보여도 그 안엔 깊은 상처와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 송화는 냉철한 리더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친구들의 아픔을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의학적 지식이 없어도 이해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하는 건 ‘삶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최대한 조용하고 섬세하게 그린다. 환자의 죽음을 대하는 의사의 무거운 표정, 사랑을 고백할 때의 주저함, 밴드 연습 중에 터지는 웃음, 그 모든 순간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내가 울고 웃었던 ‘쉼표’였다

개인적으로 ‘슬의생’을 본 시기는 굉장히 바쁘고 지쳤던 시기였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며 혼자 식사를 하며 보던 그 드라마는 뉴스보다 따뜻했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은 밴드 연습 후 라면을 나눠먹는 장면이다. 거기엔 위대한 결말도 없고, 대단한 사건도 없다. 그냥 친구들끼리 어울려 ‘지금 이 순간’을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내 친구가 떠오르고, 가족이 떠오르고, 지금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떠올랐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내게 ‘그냥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드라마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공의 문제로 시끄럽다. 정확하게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의대 정원 확대는 제자리걸음이 된거 같지만 내가 보는 시건은 곱지 않다. 우리집에서는 언니 조카가 세브란스에서 전공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전공의 유급문제로 우리집안에서도 조금 시끄럽기는 하다. 한쪽에서는 집단이기주의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의 질적 저하를 이야기하고 당연히 우리가족이 모이면 후자의 편을 들어야하지만 전자의 생각이 나한테 아에 없는건 아니까. 하지만 결국은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동네 소아과를 갈때마다 불만이 터져나왔기때문에 결국 이 문제가 나왔던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누구나 동경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조금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그들도 사람이기때문에 욕심이 있겠지 하는 시각. 그래서 조금 씁쓸하다.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 라고 생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서로의 인생을 연주하는 사람들

드라마 속 밴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건 이 다섯 친구가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매주 목요일, 그들이 함께 연주하며 부르는 곡들은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장치이자, 말로 하지 못하는 진심을 음악으로 전하는 방식이다. 익준이 불렀던 ‘아로하’, 정원이 쳤던 피아노, 송화가 기타를 잡으며 미소 지었던 순간들. 그 모든 음악은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감정 그 자체였다. 누군가의 고백이든, 누군가의 이별이든, 그건 멜로디 속에 스며들어 시청자에게 더 오래 남는다. ‘슬의생’이 남긴 수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그 밴드실 장면들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진한 감정이 흐르는 곳이었다.

삶이 매일 같을지라도, 그 하루가 소중한 이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크게 보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다. 누군가는 ‘밋밋하다’, ‘심심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의사로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해서 늘 영웅 같을 필요는 없다. 가족과의 갈등도 있고, 사랑 앞에서는 서툴고, 실패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감정 속에서도 매일 병원으로 나가 환자의 손을 잡고, 동료와 눈을 맞추고, 인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슬기로운 삶’을 보여준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삶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걸 조용히 말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