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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65.8%의 전설, 드라마 ‘첫사랑’이 남긴 우리 모두의 기억

by diary1010 2025. 5. 4.

드라마 첫사랑 포스터
첫사랑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첫사랑’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인 65.8%를 기록한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드라마 안 봤다고 하면 간첩”이라는 농담을 들었을 정도로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였다. 나 역시 10대 후반의 청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대학 입시의 바쁜 하루를 보내던 시기, ‘첫사랑’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감정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드라마는 가난한 집안의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감정선과, 그 속에서 어긋나는 가족애, 복수심, 계급 갈등, 사랑의 무게를 강렬하게 다뤘다. 배용준, 최수종, 이승연 등 톱스타들의 열연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힘과 영상미, 감정을 밀도 높게 표현한 연출까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글에서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된 나의 시선으로 ‘첫사랑’이 왜 그토록 대중의 가슴을 울렸는지, 그리고 오늘날 다시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짚어본다.

65.8% 시청률, 그 숫자가 말해주는 '첫사랑'의 위상

당시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3이었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이 방황하던 질풍노도의 한해를 보내고 있었다. 대학을 가야했기에 마음을 부여잡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무렵, 저녁만 되면 온 집안이 고요해졌다. 드라마 ‘첫사랑’이 방영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시간에 맞춰 TV 앞에 가족 모두가 자리를 잡았고, 나는 혼자 공부하던 독서실의 휴게실에서 가족들 몰래 TV를 볼 만큼 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답답한 마음의 탈출구였던거 같다.

지금이야 65%라는 숫자가 상상이 안 될 정도지만, 그땐 국민 절반 이상이 같은 시간, 같은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었다. 극 중 인물들이 눈물 흘리면 나도 따라 울었고, 복수의 칼날을 갈 때는 같이 분노했다.

드라마는 가난한 집안의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한 삼각관계 이상의 감정선이 있었다. 형제 간의 희생과 질투,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오해,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그 모든 것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을 살았던 우리 모두에게 ‘첫사랑’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한 주를 버텨내는 정서적 동반자였고, 때론 우리가 하지 못한 말, 하지 못한 선택을 대신 해주는 대리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는, 그 당시의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반영했다. 계층 갈등, 성공에 대한 욕망, 복수와 용서, 운명적 사랑. 그런 것들이 얽히고설킨 스토리 안에서 아주 치밀하게 드러났다.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나의 20대를 위로해준 작품, ‘첫사랑’을 이렇게 다시 꺼내본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팠던 사랑, 그리고 가족의 무게

‘첫사랑’은 이처럼 단순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았다. 드라마의 중심은 형 성찬(최수종)과 동생 찬우(배용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게 된 여자 혜경(이승연)의 이야기였다.

성찬은 희생적이고 책임감 강한 인물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그가 사랑했던 여자 혜경을 동생 찬우에게 빼앗기게 된다.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찬우는 공부 잘하고 똑똑했지만, 그만큼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었다. 그는 형과 달리 사랑을 앞세웠고, 결국 형과의 갈등을 피하지 못한 채 혜경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사랑을 얻은 대가로 잃는 것이 얼마나 큰지도 함께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이었다.

혜경은 부잣집 딸로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선택은 드라마 내내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당시 나는 오히려 혜경에게 많은 감정을 이입했다. 그녀 역시 누군가의 딸이자 여자로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실상은 가족 이야기이자 계층 이야기였다. 빈부 격차, 부모의 기대와 압박, 형제 간의 질투, 사회적 불평등. 그 안에 우리는 모두 있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누구나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성찬이 홀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었다. 그는 너무도 많은 걸 감내했고, 끝내 아무도 몰래 짐을 짊어졌다. 찬우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그 장면이 주는 감정의 파장은 20대였던 과거의 내게도, 중년이 다된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강렬하다.

OST ‘첫사랑’ 역시 드라마의 감정을 극대화하며 국민가요처럼 불렸다. 이승철의 애절한 목소리는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시청자의 가슴을 쥐어짜듯 울렸다. 음악과 드라마가 완벽하게 어우러졌던 명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첫사랑의 이름

이제는 50대를 바라보는. 드라마 속의 그 청춘들처럼 사랑 앞에서 뜨거웠고, 가족 앞에서 무거웠던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진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선택이 꼭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에게도 말하지 못한 첫사랑이 있었고, 다가서지 못한 형제가 있었으며, 가족에게 내색하지 못한 눈물이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첫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깊이 박힌 것 아닐까.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청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드라마는 빠르고 자극적이다. 반면, ‘첫사랑’은 느렸지만 진심이 있었다. 대사 하나, 표정 하나에도 감정이 녹아 있었고, 그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나는 가끔 그런 드라마가 그립다.

‘첫사랑’은 그렇게 지금도 내 안에서 유효하다. 그것은 잊혀진 사랑의 이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이고,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빛나는 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이름을 들으면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를, 어떤 시절을,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 우리는 사랑했고, 상처받았고, 성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첫사랑’이라는 드라마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