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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으로 악을 다스리는 남자 – 빈센조, 정의란 무엇일까?

by diary1010 2025. 5. 21.

2021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는 마피아 변호사 출신 빈센조 까사노가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부패한 대기업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다크 히어로물이다. 송중기의 완벽한 연기 변신과 전여빈, 옥택연 등 탄탄한 조연진의 활약,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었다. 법과 정의가 무력한 현실에서 ‘악당의 방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통쾌함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으며, 코미디와 스릴러, 블랙 유머가 혼재된 장르적 실험 또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 빈센조 포스터
빈센조

 

법이 무력한 곳에서 정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빈센조’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아닌, 악의 방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인물을 내세운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불의에 침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선의를 무기로 삼는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폭력과 협박, 위협과 거래를 통해 정의가 아닌 ‘균형’을 추구하는 냉철한 전략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시대의 현실성과 통쾌함을 만든다. 부패한 거대 권력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 그 안에서 법과 도덕이 더 이상 약자의 편이 되지 못할 때 빈센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어두운 정의의 대리인으로 등장한다.

그럼 이런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사회통념이 본편화되어버린 사회의 불의함에 있을거같다.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럽고 빈부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기득권계층에 대한 일반 국민들 특시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차별'과 '피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다크초콜릿같은 씁쓸한 드라마가 등장한게 아닐까?

빈센조 까사노, 복수와 구원의 이중성

빈센조(송중기)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의 변호사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우연히 금괴가 숨겨진 금가프라자에 얽히고, 그곳에서 유쾌하고도 기이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이 이야기에 깊게 들어가는 계기는 단지 금 때문이 아니다. 그는 점점 이해타산을 넘어선 ‘정의’와 ‘분노’에 연루되며, 이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짓밟는지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특히 바벨그룹과의 대결은 그가 과거의 ‘도구’로써 현재를 어떻게 응징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심축이다. 그 과정은 폭력적이고, 계산적이며, 때로는 지나치게 비정하다. 그러나 그 비정함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에 대한 단 하나의 유효한 응답처럼 보인다.

빈센조는 내 안의 욕망을 대리해주는 캐릭터였다

현실에서는 불의를 보면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어디에도 쏟아낼 수 없다. 그래서 ‘빈센조’를 볼 때 나는 어떤 장면에서 오히려 시원하게 웃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저 정도는 돼야 이길 수 있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무서운 감정이기도 했다. 나조차도 정당성을 포기하고 복수의 통쾌함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센조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었다. 그는 금가프라자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웃음을 배우고, 신뢰를 배우고, 어느새 함께 울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그 변화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이었고, 나 역시 그 감정선에 함께 물들어 갔다.

장르를 넘나드는 서사 – 블랙 코미디의 미학

‘빈센조’는 블랙 코미디로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폭력과 복수가 중심이지만, 그 안엔 의외로 따뜻한 유머와 공동체적 연대가 녹아 있다. 금가프라자의 입주민들은 처음엔 이기적이고 제각각이지만, 점점 서로를 지켜주는 ‘작은 연합’이 된다. 이 연대는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한 부분을 책임지며, 빈센조라는 차가운 남자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배경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구성은 ‘악을 이기는 건 반드시 선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달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민주화가 잘 되어있다. 국가 인권위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자라왔다. 그결과 사회는 개인화되었고 '우리'에서 '나'로 세상의 중심이 옮겨졌다. 이게 나쁘다는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가 피해를 보는것에 참을성이 많이 없어졌다. 시대에 따라서 '정의'가 바뀌기는 하지만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바뀐거 같다.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한다. 지금은 거대한 기득권에대한 부당함을 올바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게 사람들의 인식인가보다. 그리고 좀더 자극적인 아니 더 쎈 '악'으로 해결을 하면서 통쾌해한다. 이건 조금 위험한 소재인거 같은데 나역시 함께 통쾌해한다. 나도 대한민국 아줌마이기때문에.

정의는 어쩌면, 불완전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어찌되었든 송중기는 멋지다. 송중기라는 배우로 인해서 이 '악'이 조금더 극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빈센조’는 단지 통쾌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 안엔 질문이 있다. “정의는 언제나 옳은가?” “법은 누구의 편인가?”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빈센조는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가장 통쾌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의 방식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이긴 것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빈센조’는 정의가 무기력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크히어로의 방식으로 가장 강렬한 질문을 던진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