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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드라마 미생이 남긴 이야기

by diary1010 2025. 5. 9.

드라마 미생 포스터
미생

 

2014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바둑밖에 모르던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인턴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의 벽에 부딪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현실 공감 오피스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수많은 직장인의 고충과 현실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와 인간 관계를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정면 돌파보다는 눈치와 타협, 이상보다는 생존이 우선인 조직 사회에서의 몸부림을 그리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당시 37세였던 나에게도 또 다른 위로와 반성, 공감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여전히 사회 속에서 ‘완생’을 향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삶의 거울이었다.

미생은 그당시 내또래의 아니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셀러리맨들에게 격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웹툰과 함께 드라마가 가지고온 숱한 화재와 인기는 그시절 함께 시청했던 독자들 모두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남편과 나 역시 미생의 한 부분품이었기때문에 슬픔과 애환을 자기화 시키고 그안에서 위로를 얻었으리라 생각하다. 

회사라는 바둑판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手)를 두던 시절

2014년 가을, 나는 직장생활 10년 차를 넘긴 상태였다. 개인적으로는 늦었지만 아이를 갖고자 남편과 노력하던 시기였고 직장에서는 챗바퀴돌듯 열씸히 다람쥐마냥 쉬지않고 달리던 시기였다. 한때는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무언가를 꿈꿨지만, 현실은 늘 타협과 생존의 문제로 바뀌어갔다.

그 즈음 만난 드라마 ‘미생’은 나의 지난 회사 생활을 마치 CCTV처럼 되돌려보는 듯한 충격을 줬다. 주인공 장그래는 특별한 스펙도, 정규직 자격도 없이 바둑이라는 과거 하나만을 안고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온 청년이다. 무기력해 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 절실했고, 그 절실함 하나로 조직 속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물들이다.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끄는 오상식 과장, 냉철하지만 인간적인 안영이, 인턴 경쟁자로서 끝없이 비교되는 장백기, 그리고 스스로 벽을 깨려 애쓰는 한석율. 그들은 모두 완생을 꿈꾸지만, 현실 속에선 ‘미생’으로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사람들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자꾸만 1997년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사회를 마주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입사 첫날, 첫 실수, 첫 야근, 첫 질책… 그 모든 순간들이 미생 속 장면 장면과 겹쳐지며 가슴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든 직장인이 겪어야 했던 생존의 룰, 그 안에서 피어난 연대

‘미생’은 무엇보다도 현실의 조직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드라마였다. 그 속엔 멋지고 유능한 주인공도, 화려한 반전도 없었다. 대신 우리네 삶과 똑 닮은 고민과 충돌, 눈치와 타협, 그리고 가끔 피어나는 용기와 진심이 있었다. 장그래는 조직 속에서 늘 ‘낀 존재’였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그에게 늘 ‘한계’를 각인시켰고, 상사의 인정을 받아도 시스템 안에서는 늘 이방인이었다. 그가 팀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뛰어다니며 실적을 올려도 돌아오는 건 ‘계약 만료 예정자’라는 꼬리표뿐이었다. 하지만 그를 외면하지 않았던 오상식 과장은 한 인간으로서 그를 품고, 가르치고, 함께 싸웠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상사와 부하직원이 아니었다. 그건 ‘동료’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30대 초반, 나를 믿고 끌어주었던 선배를 떠올렸다. 혼이 나고 울고 싶은 날, 조용히 불러내어 “야, 누구나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라고 해줬던 그 한마디. 사무실 계단에 앉아 억울함에 혹은 속상함에 몰래 울다가도 그 말 하나에 또 하루를 버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용기를 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미생’은 말한다. 조직은 비정하고, 인맥은 중요하며, 이상은 종종 눌리고, 사람은 때때로 나약해진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은 서로를 통해 살아남는다고. 현실은 냉혹하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것이 ‘누군가를 향한 진심’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나는 아직 미생,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가끔은 서로의 직장에서 있었던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위로하며 함께 마음을 공감받는 시간을 갖곤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같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에 결국 감정이 받는 상처는 남편이나 나나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미생을 함께 보면서 우리는 역시 한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내왔고 견뎌왔던거 같다.

지금 나는 직장에서 위기의 순간에 와 있다. 이정도 나이가 되고나니 이제는 지키는것보다 잃을게 더 많은 사람이 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쯤 되면 ‘완생’의 언저리에 도달했을 거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여전히 미생이다. 결정의 순간마다 망설이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그 모든 과정이 아직도 매일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건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걸. ‘미생’은 나에게 다시 한번 “너, 아직 멈추지 않았구나” 하는 다정한 확인을 해준 드라마였다. 이제는 후배들이 내게 묻는다. “부장님, 일은 언제쯤 익숙해지나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익숙해지진 않아. 다만, 버텨지는 거지.” 그리고 덧붙인다. “괜찮아. 그게 바로 살아내는 거야.” 지금도 미생인 당신에게, 혹은 이미 지쳐 주저앉고 싶은 사람에게 이 드라마를 권한다. 우리 모두 미생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완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