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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좇는 자, 자유를 꿈꾸는 자 – 추노가 남긴 질문

by diary1010 2025. 5. 7.

드라마 추노 포스터
추노

 

2010년 KBS2에서 방영된 드라마 ‘추노’는 장혁, 오지호, 이다해 주연의 액션 시대극으로, 조선시대 도망 노비를 쫓는 추노꾼의 삶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 사랑, 복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압도적인 스케일과 미장센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특히 한국 드라마 최초로 시네마 카메라를 사용하여 영화 같은 영상미를 완성했으며, 촘촘한 전개와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2010년 결혼 5년차의 치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적응해가고 회사에서는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변화를 꿈꾸던 시기였다. 어찌되었든 가정과 직장 내 삶의 큰 두가지 축 안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 '추노'는 내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는가. 14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2010년, 나의 삶에 칼처럼 꽂힌 드라마

2010년, 나는 서른셋이었다. 사회생활 8년 차에 접어든 나는 직장 안팎에서 늘 바삐 움직였고, 하루하루를 소모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2가지 역할을 감당해야만 하는 여자로서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아마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커리어우먼들은 모두 이해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시절 마음속 어딘가엔 분명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현실은 늘 그것을 비껴가게 만들었다.

 

그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연히 TV를 틀었고, 그 화면 속에 나타난 첫 장면이 나를 사로잡았다. 푸른 하늘 아래 황토를 박차고 달리는 사내들의 숨 가쁜 추격. 드라마의 제목은 ‘추노’였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시대극도, 단순한 복수극도 아니었다. 노비를 쫓는 추노꾼 ‘대길’과 도망노비 ‘송태하’,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언년이’의 이야기는, 각자의 삶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건드리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의 억압,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뜨거운 감정들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칼날 위의 인생, ‘추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드라마 ‘추노’는 겉으로는 ‘노비를 잡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훨씬 깊고 복잡하다. 대길(장혁)은 양반 집안의 자제였지만 사랑했던 여인을 잃고 추노꾼이 된 인물이다. 복수심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은 비정하고 거칠지만, 그 안엔 분명 따뜻한 인간애가 숨어 있다. 반면 송태하(오지호)는 무장 출신 도망 노비로, 정의롭고 신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나라와 명분을 위해 싸우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을 내린다.

 

이 두 인물은 ‘자유’를 꿈꾼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자유를 얻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복수와 탐욕을 통해, 또 다른 하나는 희생과 신념을 통해. 이처럼 드라마는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대길과 태하의 선택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두 남자의 삶에서 ‘잃어버린 과거’이자 ‘지켜야 할 미래’로 존재한다. 언년이를 둘러싼 감정선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순수함이 있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 함께 걷고 싶은 바람, 그 모든 것이 언년이라는 인물 안에 응축되어 있다. 드라마가 흥미로운 점은, 각자의 신념을 위해 싸우던 이들이 결국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망노비, 추노꾼, 무장, 양반. 그런 타이틀들이 무너지고, ‘인간’ 그 자체로 남게 될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영상미가 압도적이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시네마 카메라를 도입했고, 광활한 야외 촬영지, 역동적인 액션, 생생한 인물 묘사는 지금 다시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장혁의 날카로운 눈빛과, 오지호의 묵직한 연기, 그리고 이다해의 절제된 감정 표현은 캐릭터를 생명력 있게 만들었다. 내가 매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내 삶 어딘가와 겹쳐지는 것 같은 진정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내 ‘추노’를 좇는다

요즘 블로그를 하면서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다시보는 추노는 그때 보았던것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나는 종종 2010년의 내가 보았던 ‘추노’를 떠올린다. 당시엔 그저 강렬한 시대극으로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안에 담긴 삶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길처럼, 나 역시 때론 과거의 상처에 매이고, 송태하처럼 정의롭고 싶지만 현실에 타협할 때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추노를 계속해서 좇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이란 결국,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명예든, 자유든, 사람마다 추노하는 대상은 다르다. 그리고 그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추노’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건 내 안의 침묵하던 갈망을 흔들고, 무뎌진 감정의 결을 되살려준 이야기였다. 만약 지금 당신이 인생의 방향을 잃고 있다면, 혹은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이 드라마를 다시 한번 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해 보길. “나는 지금 무엇을 좇고 있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