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는 당시 가족 드라마의 전형을 깨고, 일상의 소소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병원을 운영하는 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웃음을 주면서도, 가족의 의미, 세대 갈등, 육아 고민, 직장 내 갈등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매 회차마다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안을 선사했다. 나에게 이 작품은 대학 새내기였던 1998년, 기숙사 공용 TV 앞에 둘러앉아 친구들과 함께 보던 소중한 시간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이제 막 사회로 나아가던 나이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순풍산부인과’는 짧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로 내 하루를 채워주었다. 2025년, 어느덧 삶의 반을 살아낸 48세가 된 지금 이 드라마를 다시 떠올리는 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 있는 감정’들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기숙사 공용 TV 앞, ‘순풍산부인과’와 웃던 우리의 밤
1998년이면 나는 대학 2학년이었다. 지금은 나이 지긋한 중년이지만, 그때는 막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시절이었다. 공강 시간엔 학생회관에 모여 수다를 떨고, 저녁 무렵이면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그날 그 시간이 되면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순풍산부인과’.
그 시절엔 OTT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방송 시간에 맞춰 본방을 챙겨보는 것이 당연했고, 공용 TV 앞에 누가 먼저 앉느냐가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순풍산부인과’는 그런 ‘시간의 고정’을 만든 드라마였다. 짧은 20분 남짓의 시트콤이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껏 웃고, 때로는 뜨끔한 반성을 하기도 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가족과 직원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엮어가는 일상은 마치 우리 주변의 이야기 같았다. 누구나 한 명쯤은 알고 있을 법한 고지식한 아버지, 눈치 없는 삼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동생, 잔소리 많지만 결국 따뜻한 어머니. 드라마 속 인물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이나 이웃, 혹은 나 자신과 겹쳐 보였다.
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때로는 외롭기도 했다. 학교 생활이 낯설었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 중 ‘순풍산부인과’를 보는 그 20여 분은 내겐 작은 안식처였다. 웃음은 잠시였지만, 마음은 그보다 오래 따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웃음 속에 ‘괜찮다’는 위로가 있었던 것 같다.
‘순풍’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이 시트콤이 빛났던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캐릭터’였다. 흔히 시트콤이라고 하면 과장된 인물 묘사가 떠오르지만, ‘순풍산부인과’는 다소 극단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이었다. 그 현실감은 대사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녹아 있었고, 덕분에 시청자들은 웃음 뒤에 마음을 내어줄 수 있었다.
먼저, 병원 원장이자 아버지인 송기윤(송승환)은 고지식하고 답답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가 자녀들에게 쏟아내는 잔소리는, 나이가 든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따뜻한 훈계였다는 걸 알게 된다.
미달이(김성은)의 존재는 당시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린아이가 가진 특유의 직설성과 순수함이 결합되어, 어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주는 느낌이 있었다. “아빠 바보~”라는 대사는 지금도 유행어처럼 회자된다.
박영규, 윤다훈, 윤여정, 최불암, 오지명 등 쟁쟁한 조연들이 극의 무게를 단단히 받쳐주었다. 특히 박영규는 당시 MZ세대도 인정할 만한 예능감으로 프로그램 전체를 쥐락펴락했다. ‘빽~’이라는 유행어는 전국을 강타했고, 회식 자리에서 이 말을 따라 하던 선배들이 어쩐지 정겹게 느껴지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는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끝날 땐 어딘가 짠했다. 간호사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이야기, 아버지의 생신을 잊어버리고 미안해하던 가족의 모습, 환자의 사소한 고백이 병원 식구들에게 전염되어 위로가 되는 구조까지.
2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가 일상 자체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우리는 공감했고, 큰 결말 없이도 여운을 느꼈다. 그게 ‘순풍산부인과’만의 힘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미달이의 어린이날’ 이야기였다.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해 투정 부리던 미달이가, 마지막에 자신이 진짜 바란 건 ‘엄마 아빠와의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 장면은 눈물이 찔끔 났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웃음을 넘어선 위로, 지금 다시 돌아보고 싶은 순풍의 시간
48세가 된 지금, ‘순풍산부인과’는 단지 옛날 시트콤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내 20대, 대학 시절의 공기와 함께 기억되는 감정의 조각이다. 함께 보던 친구들, 웃으며 떠들던 기숙사 복도, 시험 끝난 날의 해방감. 그 모든 것과 함께 ‘순풍산부인과’는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자극적이지 않지만 진심이 있고,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순풍산부인과’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지금의 콘텐츠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 안에는 지금보다 더 절실했던 우리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시 보아도 좋을 시트콤이란 이런 것이다. 웃음이 유효하고, 그 안에 감정이 녹아 있으며, 다시 꺼내보면 언제든 따뜻해지는 이야기. ‘순풍산부인과’는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웃었던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 안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웃음을 그리워한다는 건, 우리가 여전히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 아닐까.
언제 다시 방송해도 좋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순풍산부인과’는 그런 작품으로, 오늘도 내 기억 속에서 순풍처럼 부드럽게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