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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인, 장금이… '대장금'이 가르쳐준 인내와 성장의 서사

by diary1010 2025. 5. 5.

드라마 대장금 포스터
대장금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MBC 드라마 ‘대장금’은 실제 인물 서장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사극으로,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어의(御醫)로 성장하는 여정을 그렸다. 이영애의 섬세하고 단단한 연기와 함께 요리, 궁중의학, 인간관계, 권력구조 등 다양한 요소를 담아낸 이 작품은 국내 최고 시청률 57.8%를 기록했고,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한류 사극’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나는 27세,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던 시기였다. 퇴근 후 드라마를 틀면, 장금이의 고단한 하루가 내 하루처럼 느껴졌고, 그녀가 버티는 모습에서 나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나는 장금이의 여정을 다시 되짚어보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얼마나 현재에도 유효한지 곱씹어 보게 된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지탱해준 장금이의 한마디, “해보겠습니다”

2003년, 나는 27살이었다. 첫 직장에서 막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고, 매일 쏟아지는 업무와 낯선 인간관계 속에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 시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유일한 안식처가 바로 ‘대장금’이었다. TV를 켜면 장금이가 있었다. 언제나 부지런했고, 늘 미소를 잃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던 그녀는, 그 자체로 위로였다.

장금이는 처음부터 강한 인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궁궐로 들어가 수랏간 나인으로 일하며 끊임없이 부딪치고 무시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눈물을 참아가며 다음을 준비했다.

당시의 나는 회의실에서 자신 있게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웠고, 선배 앞에서 늘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장금이는 왕 앞에서도, 중전 앞에서도 당당했다. 물론 겉으론 두려움이 가득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세상을 향한 그녀의 태도였다.

‘대장금’을 보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장면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장금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무언가가 울컥했다. 그건 아마도, 나와 너무 닮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성공기가 아니었다.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한 여자의 싸움이자, 그 안에 담긴 성장의 기록이었다.

궁중 수라간부터 어의의 자리까지, 장금이의 서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대장금’은 요리로 시작해 의학으로 확장되는 서사 구조를 지닌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초반부 수랏간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관계와 성장을 보여줬고, 중반 이후 의녀가 된 장금이는 병과 마주하며 삶과 죽음을 탐구하는 인물로 거듭난다.

특히 요리를 대하는 장금이의 태도는 인상 깊었다. 단순히 맛을 내는 기술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능력은 마치 한 사람의 생을 품는 행위처럼 그려졌다. “이 맛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죽 맛과 닮았습니다”라는 대사는 음식에 담긴 정서를 되새기게 했다.

의녀로 전환된 이후, 장금이는 본격적으로 ‘권력’과 마주하게 된다. 남성 중심의 의관 집단 속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배척당하고, 출신 성분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의 고통 앞에서 장금이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그녀는 환자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전마마의 출산 장면. 그 어떤 의관도 나서지 못할 때, 장금이가 홀로 책임을 짊어지고 출산을 이끌어낸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성공’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빠르게 승진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최선을 다하며, 언제나 타인을 생각하는 태도가 곧 장금이가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그것은 그 시절 내게도 절실했던 태도였다. 칭찬 한 마디 없이 반복되는 일, 실수 하나로 비난받는 하루, 내가 가진 신념이 틀린 건 아닌지 늘 불안했던 시절. 그때마다 장금이를 떠올리면, 조금은 위로가 됐다. “나는 나대로 가면 되겠구나.” 그것이 내가 ‘대장금’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장금이라는 이름, 지금도 삶을 붙잡아주는 말

이 드라마를 봤던 20대 청춘의 나는 시간이 흘러 지금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덧 직장에서는 중간관리자라는 직함이 붙었고, 집에선 아이에게 인생을 설명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너무 지치고 버거운 날이면, 문득 ‘장금이’가 생각난다.

“해보겠습니다.” 드라마 속 그녀가 반복하던 그 짧은 말은,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태도로 남아 있다. 모든 게 불안정했던 20대 후반, 내 마음을 붙들어줬던 이 드라마는 성장에 대한 가장 선명한 기록이자, 버팀목 같은 이야기였다.

‘대장금’은 단순히 여성 영웅 서사가 아니다. 그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와 태도, 불가능해 보여도 시도해보는 용기, 그리고 감정이 앞서기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장금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우리가 이 시대에 놓치고 있는 많은 가치들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끝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말한다. 누군가 내게 “그걸 왜 해요?”라고 물을 때, “해보겠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