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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울게 만든 드라마 – 나의 아저씨, 삶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diary1010 2025. 5. 16.

드라마 나의 아저씨 포스터
나의 아저씨

 

2018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상처를 가진 남녀가 만나, 조용히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이선균, 아이유(이지은)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연기진과 박해영 작가의 섬세한 필력, 김원석 감독의 감정선 깊은 연출이 어우러져 회차를 거듭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요즘, 이 드라마는 아프지만 따뜻하게, 조용하지만 강하게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끄럽지 않은 위로, 함부로 건네지 않는 손길, 그러나 분명 존재했던 다정함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 드라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따뜻함'이였다

어떤 드라마는 스토리로 기억되고, 어떤 드라마는 인물로 기억된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세상에 대해 아무 기대도 없는 스물한 살의 이지안.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도 꿋꿋이 견디는 40대의 박동훈. 이 둘의 관계는 낯설고, 어색하며,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조합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진심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관계의 이름을 규정하지 않는다. 사랑도, 우정도, 보호자도 아닌, 그저 옆에 있어주는 존재. 그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이야기의 흐름 대신 정적 속의 시선, 무표정한 표정, 그리고 말하지 않는 진심으로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 어떤 감정을 함께 겪었는지가 더 또렷하게 남는다는 것을.

견디는 사람들과 견디게 해주는 사람들

드라마는 아주 현실적인 곳에서 시작한다. 비정규직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지안, 사내 정치의 중심에서 조용히 무너져가는 동훈. 그리고 그 주변에 놓인 동훈의 가족, 친구, 회사 사람들. 이들은 모두 대단한 사건 없이도 무너지기 쉬운 삶을 살고 있다. 누구도 크게 성공하지 않았고, 누구도 뚜렷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견디는 삶' 자체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지안은 돈 때문에 사람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감시의 대상이 동훈이다. 하지만 그 감시가 반복될수록 그녀는 점점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는 조용한 연민이 된다. 동훈은 지안의 배경을 모른 채 그녀를 특별히 대하지 않는다. 그저 회식 자리에서 말을 건네고, 도시락을 건네고,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도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그녀를 감싼다. 이 드라마는 ‘고맙다’는 말 대신 ‘밥은 먹었냐’는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다.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를 보던 시절, 마음이 꽤 많이 지쳐 있었다. 딱히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일상이 무기력했고, 어디선가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에게 말을 걸기엔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런 나에게 이 드라마는 조용히 다가와 앉아준 느낌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훈이 지안에게 처음 진심을 묻던 순간이다. “넌 괜찮냐?” 지안은 그 말을 처음 듣는다. 누군가가 자기의 안부를 진심으로 묻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 그녀의 얼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장면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들었더라면, 혹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물어줄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조심스레 묻게 되었다.

자극 없이, 진심만으로 만들어낸 드라마의 힘

‘나의 아저씨’는 극적인 전개 없이도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그 중심엔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이선균은 흔들리는 가장의 복잡한 내면을 절제된 말투와 눈빛으로 표현하고, 아이유는 지안이라는 캐릭터의 공허함과 단단함을 어쩌면 본인의 인생과 겹쳐지듯 절절하게 연기한다. 또한 연출은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배경음은 최소화되었고, 카메라는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고요히 인물을 지켜본다. 시청자가 인물의 감정을 스스로 채워넣게 만드는 연출이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위대함은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소리 없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지안은 끝내 사람을 죽이지 않고, 동훈은 끝내 진실을 밝히고, 그 둘은 이름도 없는 관계로 서로를 지켜낸다. 어쩌면 이게 가장 인간다운 결말 아닐까.

누구에게나 ‘나의 아저씨’는 존재해야 한다

‘나의 아저씨’는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를 조금씩 일으켜 세운다. 드라마가 끝나도, 시청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위로해주는 이야기.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세상은 여전히 무정하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조용한 시선 하나가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준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이든, 혹은 회사 동료이든. 누군가의 마음속에 이 드라마의 동훈이나 지안처럼 아무 말 없이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나의 아저씨’일지 모른다. 그리고 당신 역시 누군가의 아저씨, 누군가의 지안일 수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 드라마는 가장 깊은 울림을 준다.

이선균 배우를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너무 좋아하는 배우였고 그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기에 그리고 그 특유의 음색과 분위기를 다시는 볼 수 없기에 마음이 너무 슬프다. 부디 좋은곳에서 아픔이 없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