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SBS에서 방영된 ‘피노키오’는 박신혜와 이종석이 주연을 맡은 청춘 미디어 드라마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여주인공과, 가족을 비극적으로 잃고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청년이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진실과 왜곡, 언론의 권력, 청춘의 성장이라는 요소를 로맨스와 결합해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감성적인 서사를 균형 있게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언론과 사실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기억에 남을 드라마다.
거짓말이 상처가 되는 세상에서
‘사실’과 ‘진실’은 늘 같지 않다. 특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더욱. 드라마 ‘피노키오’는 그 미묘한 차이를 파고들며, 뉴스란 무엇인지, 보도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작중 배경은 방송사. 그리고 중심에 선 두 사람.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거짓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있다.
최인하(박신혜)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인물로, 거짓말을 하면 참을 수 없는 딸꾹질이 터진다. 반면, 기하명(이종석)은 사회의 왜곡된 보도로 인해 가족이 파괴되고,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며 기자가 된 청년이다. 이 둘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또 흔들리기도 한다.
드라마는 현실 속 언론이 얼마나 쉽게 누군가의 인생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보도 뒤에 숨겨진 사람의 감정과 피해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시기, 나 또한 뉴스 한 줄에 상처받고, 사실과 다르게 전달된 말들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일이 많았기에, 이 드라마가 유독 깊게 다가왔다.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위해서는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수도 있지만 진실과 정의라는게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건 나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였던거 같다. 열정이 끓어오르는 학창시절에는 사회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에 몰입을 하였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닳아가는 날카로운 마음도 있지만 사람들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처한 어려움과 그안에 있는 진심을 보았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이고 악인지가 불분명해져 갔다.
우리사회도 역시 마찬가지인거 같다. 다들 쉽지 않은 삶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때문에 드라마 안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고 공감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언론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얼굴들
‘피노키오’는 언론 비판 드라마라고만 하기엔 너무도 감성적인 작품이다. 기자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 그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을 구하거나 망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여실히 보여준다. 이종석이 연기한 기하명은, 어릴 적 뉴스로 인해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가족이 흩어진 비극을 겪은 인물이다. 그는 기자가 되어서도, 진실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늘 고민한다.
박신혜의 최인하는 피노키오 증후군 덕분에 오히려 진실에 가까이 가려 하지만, 세상은 단순히 ‘진실한 말’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초반엔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고, 진실보다도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의도’라는 걸 깨닫는다. 드라마는 언론 내부의 조직 구조, 보도 라인, 데스크의 압박, 시청률 경쟁,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자들의 현실을 매우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사랑 이야기로 빠지는 대신, ‘함께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좀 더 깊고 단단한 서사로 진행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기자가 자신의 과거 보도를 되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을 하는 장면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뿐 아니라 이 드라마는 어쩌면 우리가 평소 무심코 넘긴 기사 한 줄이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상기시킨다.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향하지 않는다
‘피노키오’를 보고 난 후 가장 오래도록 남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른 이에게는 상처일 수 있다는 것. 내가 쉽게 한 말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도, 단순한 사회 비판도 아닌, 말을 다루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조용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직업, 누군가에게는 사랑, 누군가에게는 과거,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였던 진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모든 ‘진실’이 사람의 삶 위에 놓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뿐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용기지만, 그 진실 앞에 겸손해지는 것은 더 큰 용기임을 이 드라마는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