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BS2에서 방영된 드라마 ‘아이리스(IRIS)’는 이병헌, 김태희, 김소연, 정준호, 김승우 등이 출연한 블록버스터 첩보 드라마로, 국가 비밀 조직 ‘NSS’를 배경으로 한 정보전과 암살, 정치적 음모, 그리고 사랑과 배신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다. 국내 드라마 최초로 헝가리, 일본, 미국 등 해외 로케이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영화 수준의 연출과 탄탄한 각본,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어우러지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IT쪽 일을하던 공대여자이다보니 성향도 여성적이지않고 영화도 첩보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는 나에게 일상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몰입을 선사해 주었고, 동시에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선택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2009년, 나를 스크린처럼 사로잡았던 한 편의 영화 같은 드라마
‘아이리스’는 드라마보다 영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당시 KBS가 드라마 역사상 보기 드물게 2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며 국내 방송 콘텐츠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야심으로 내놓은 이 작품은 그 기대에 걸맞게 대한민국 드라마의 스케일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2009년 가을, 나는 가정이라는 또다른 사회와 함께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우는 나날 속에서 ‘아이리스’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펼쳐보였다.
NSS라는 가상의 국가안보 조직, 눈을 뗄 수 없는 첩보 작전,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원들의 내면. 특히 이병헌이 연기한 ‘김현준’이라는 인물은 강인함과 고뇌, 사랑과 복수를 모두 담은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정보 요원으로서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최승희(김태희)와의 관계, 배신, 음모, 그리고 자신이 처한 거대한 운명 앞에서 결코 강인하지만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첩보 액션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선택의 순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의 감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아이리스’는 액션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균열을 가장 정교하게 묘사한 감정의 지뢰밭이었다.
‘국가’를 위해, ‘사랑’을 버릴 수 있는가 – 첩보 드라마의 명작
‘아이리스’는 국가안보국 산하의 비밀 조직 ‘NSS’와, 이들과 대립하는 ‘아이리스(IRIS)’라는 국제 비밀조직 간의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첩보 액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국가라는 이름의 냉혹한 시스템과 그 안에서 소모되는 인간의 감정과 운명이 절절하게 교차한다. 김현준(이병헌)은 NSS의 최정예 요원으로, 어느 날 국가로부터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 임무 뒤에는 감출 수 없는 배신과 조작이 숨어 있었고, 결국 그는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의 한복판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최승희(김태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조직과 임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의심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사랑하지만 믿을 수 없고, 지키고 싶지만 지킬 수 없는 관계. 이 드라마가 특별했던 이유는, 이러한 인간적 딜레마를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국가, 권력, 조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다 복합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또한 김소연이 연기한 김선화, 정준호의 진사우, 김승우의 백산 등 각기 다른 신념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움직이며 전체 서사에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일본 아키타, 미군기지 등 해외 로케이션에서 펼쳐지는 추격전과 총격씬이었다.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던 리얼리즘과 시네마틱한 연출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사운드트랙 또한 드라마의 감정을 한층 고조시켰다.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는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사랑과 눈물의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한 회 한 회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고, 시청자들은 김현준의 운명을 따라가며 함께 숨을 죽이고, 함께 눈물 흘리며 “진짜 드라마란 이런 것이다”를 경험하게 됐다.
지금이야 왠만한 드라마도 특히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흔하디흔해졌지만 이시기에는 정말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고나 할까? 정말 '아이리스'를 방영하는날에 본방사수를 위해서 야근하지 않기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직도 김현준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오면서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타협을 해오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나 자신을 속이고,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때로는 누구보다 간절했던 감정을 묻은 적도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 모든 감정의 파편을 다시 꺼내 보여준 작품이었다. 내가 선택한 일, 지켜내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의 공허함까지.
김현준이란 인물을 통해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또 하나. 그토록 처절한 싸움 끝에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 남자의 고독한 뒷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위로와 공명을 안겨준다. ‘아이리스’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숨 쉰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을까, 조용히 자문하게 만든다. “김현준, 그는 허구가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