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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판타지 – 앨리 맥빌, 시대를 앞서간 로맨틱 코미디

by diary1010 2025. 5. 15.

드라마 앨리맥빌 포스터
앨리 맥빌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FOX에서 방영된 ‘앨리 맥빌(Ally McBeal)’은 젊은 여성 변호사의 일과 사랑, 자아 탐색을 코믹하면서도 철학적으로 그려낸 법정 로맨틱 드라마다. 캘리스타 플로크하트가 주연을 맡아 섬세하고도 엉뚱한 여성의 내면을 다채롭게 표현하며 당시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인기를 끌었고, 독창적인 상상 연출과 사회적 이슈를 가볍지만 진지하게 다루는 균형 잡힌 스토리텔링으로 미국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돌이켜봐도, 이 드라마는 ‘당신이 누구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따뜻하고 솔직한 친구 같았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당당한 모습과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여성에대한 사회참여등 대학시절의 내가 동경하는 모습도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그당시 나에게 강력한 끌림이 있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변호사의 이야기, 그러나 법률이 전부는 아니었던

90년대 후반, 미국 드라마에선 새로운 시도가 많았다. 기존처럼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는, 사람의 내면과 일상을 유쾌하게 들여다보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앨리 맥빌’은 그 흐름을 대표하는 드라마였고, 법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실제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모두의 모순, 불안, 그리고 사랑이었다. 앨리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보스턴의 로펌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변호사다.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감정에 휘둘리고 엉뚱하며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한 인물. 이 드라마는 그런 앨리의 ‘내면 세계’를 따라간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 그때그때 머릿속을 채우는 상상들, 때로는 현실보다 더 진지하고, 더 황당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바로 그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유머와 환상의 장치로 풀어낸다는 점. 그 시절 TV 속 여성 캐릭터는 강인하거나 완벽한 역할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앨리는 흔들리고, 울고, 상상하고, 망설였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프렌즈'라는 미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앨리 맥빌'에 푹 빠져 있었다. 아마도 드라마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해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여성 커리어우먼을 그린 드라마의 주인공에 대한 동경심이 나를 더욱 몰입하게 만든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대리만족의 감정도 컸던 것 같다. 가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캘리스타 프로크하트를 볼 때면,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하지만, 드라마 속 '앨리 맥빌'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여배우로 기억된다.

꿈과 환상, 일상과 진심이 공존하는 법정 밖 이야기

‘앨리 맥빌’의 스토리는 하나의 큰 줄기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간다. 각 회마다 등장하는 사건은 성희롱, 동성혼, 성 정체성, 윤리, 연애 등 당시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들을 가볍지만 진지하게 다뤘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앨리의 감정이다. 그녀의 연애는 늘 엇갈리고, 직장은 늘 예상 못한 방식으로 뒤틀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앨리를 보며 웃고, 공감하고, 무언가 아릿한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진짜 특징은 ‘내면화된 판타지’ 연출에 있다. 갑자기 등장하는 아기 캐릭터, 하늘을 나는 커플, 자기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각적 표현 등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연출 방식이었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또한 이 드라마는 ‘직장 내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감정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시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앨리는 때때로 바보 같고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선택을 해나간다. 드라마 속 대사 중 하나는 지금도 회자된다. “나는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나만 생각할 때도 있어. 그게 내가 나라는 증거야.” 앨리의 솔직함은 많은 여성들에게 ‘이래도 괜찮다’는 위로가 되어주었고,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제안해주었다. 법정이라는 진지한 배경, 풍성한 조연진(존 케이지, 빌리, 넬, 링), 감각적인 OST와 라이브 뮤직 바 씬 등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공감의 교과서로 만들어주었다.

조금 이상해도 괜찮아, 그게 나니까

드라마를 보던 내가 살아갔던 그 시대는 여성은 사회적 약자였다. 그리고 이후 여성의 권익이 우리나라에서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패미니즘으로 인해서 젊은 세대에서 남녀의 대립이 조금 걱정이 될 정도로 심각하다. 나도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는 하지만 내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게 걱정이 된다. 드라마속에서는 내 그당시 시각으로는 양성평등이 어느정도 이루어져 있었다.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고 변호사로서 능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비서직을 수행하는 조연배우역시 캐릭터는 당당함이 돋보였었더. 그래서 나에게 아직 우리나라와 다른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아마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그만큼 변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앨리 맥빌’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모순적인 감정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앨리는 단지 이상한 여자 변호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모두가 성공을 외칠 때 그녀는 외로움도, 그리움도 함께 꺼내 놓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서툴지만, 정직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문득 혼자 있는 순간 앨리의 상상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건 아직도 이 드라마가 당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시절, 나도 앨리처럼 나답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더 깊이 기억나는 드라마 – 앨리 맥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