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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청춘 드라마 ‘카이스트’가 내게 남긴 젊음과 도전의 기억

by diary1010 2025. 5. 4.

드라마 카이스트 포스터
카이스트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KAIST)’는 그 시절 흔치 않던 캠퍼스 드라마로, 젊은이들의 이상과 현실, 꿈과 사랑, 그리고 좌절과 성장을 진지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당시 과학기술원이라는 배경은 신선했으며, 흔히 보던 연애 중심 드라마와는 다른 지점에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냈다. 나 역시 대학생이던 20대 초반에 이 드라마를 보며, 내 안에 있던 열정과 가능성을 다시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공대생들의 이야기’라는 다소 제한된 설정 같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기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있었다. 특히, 당시 신인 배우였던 이나영, 차태현, 최강희 등이 연기한 인물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청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이 된 지금, 이 글을 통해 다시 ‘카이스트’를 떠올리며 청춘의 불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젊음의 실험실, 드라마 ‘카이스트’가 내게 던진 메시지

1999년. 지금 돌이켜보면 세기도 바뀌기 전의 마지막 해였다. 당시 나는 대학에 들어간 지 몇 년 되지 않은 대학생이었고, 세상에 대해 한껏 날이 서 있던 시기였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문득 멈춰 서게 만든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카이스트’였다.

흔히 드라마 속 대학은 로맨스의 배경으로 소비되곤 했지만, ‘카이스트’는 달랐다. 이 드라마는 실제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배경으로 하여 공대생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겉보기에는 엘리트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었지만, 실상은 우리 모두가 겪는 청춘의 방황, 진로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속 불안정한 감정들이 주된 이야기였다.

그 시절, 나는 비록 이공계 출신은 아니었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나가는 그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취업 걱정, 자존감, 첫사랑, 부모님의 기대, 나 자신에 대한 의심. 그런 것들이 드라마 속 캐릭터 하나하나를 통해 투영되었다.

차태현이 연기한 장기태는 감정 표현에 서툰 천재 공대생이었고, 이나영은 엉뚱하지만 묘하게 당당한 윤정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최강희의 밝고 현실적인 모습도 또 다른 매력이었다. 그들의 어설픈 사랑과 우정, 그리고 경쟁 속에서 나는 내 청춘의 조각을 계속 떠올리곤 했다.

드라마는 매회 가볍게 웃기기도 했지만, 마지막엔 꼭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 사람 사이의 거리감,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등,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단순한 청춘 드라마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였다.

공대생들의 성장 서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청춘 이야기

‘카이스트’는 실제 존재하는 한국과학기술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치밀하게 따라갔다.

장기태(차태현)는 수학과 물리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지만, 정작 사람과의 관계에선 서툴고 외로운 청년이다. 부모님의 기대, 교수들의 압박, 동료 학생들과의 경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모습은 20대 시절의 나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윤정(이나영)은 상큼하고 엉뚱하면서도, 때때로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다. 감성적이면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그 당시에 흔치 않던 ‘자기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로 기억된다. 그녀를 보며 많은 남성 시청자들이 설렜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최강희가 연기한 조민재는 좀 더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취업, 연애, 진로 앞에서 흔들리고, 때로는 철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시청자에게 진짜 같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이 드라마는 공대생 특유의 논리적이고 감정 없는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도 늘 진심이 있었고, 현실이 있었다. 특히 매회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개되면서도 전체 줄기에서는 각 인물의 성장과 변화를 놓치지 않은 연출이 인상 깊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내 과거를 되돌아봤다. 실패했던 첫 발표, 어설픈 연애, 술자리에서 흘린 눈물, 자존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믿어주던 몇 안 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카이스트’ 속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다.

기억나는 대사 중 하나는, "이곳은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발견하는 곳이야"였다. 당시에 들었을 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 뜻을 너무도 잘 안다. 청춘은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질문을 갖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끝나도 ‘카이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이제 40대 후반이 되었다. 청춘의 시간은 꽤 멀리 떠나간 것 같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내가 그립고 궁금하다. ‘카이스트’는 그런 내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풀며 살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인가?

당시에는 그저 재미있고 신선한 드라마로 느껴졌지만, 지금 돌아보면 ‘카이스트’는 내가 지나온 길과 참 많이 닮아 있다. 경쟁에 지치고, 사랑에 실패하고, 미래가 불안했던 시절.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던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

지금 세대의 청년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기 대신, 이런 느리고 꾸밈없는 성장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실패해도 괜찮고, 외로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드라마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카이스트’는 그런 작품이었다. 학벌이나 수치로 규정되지 않는 진짜 인간 이야기. 청춘의 서툼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간.

다시 보면, 아마 나도 모르게 웃을 것이다. 그리고 눈물도 조금 흘릴 것이다. 그건 단지 드라마가 아니라, 내 청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